역사책을 펼치면 늘 비슷한 이름들이 나옵니다. 왕, 장군, 정치가, 혹은 승리자들. 하지만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그늘진 곳에서 싸운 이들이 아닐까요? 오늘은 주류 서사에 잘 담기지 않았지만, 묵묵히 시대를 바꾼 ‘비주류 영웅’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이들은 기록보다 기억되어야 할 인물들입니다.
1.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독립운동사 하면 흔히 유관순을 떠올리지만, 남자현(南慈賢)은 보다 과감하고 급진적인 행동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입니다. 1895년생으로, 만주에서 항일투쟁에 참여하며 일본 고위 관리를 암살하려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녀는 한 손엔 권총, 다른 손엔 단두대 각오를 품고 살았습니다.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에도 “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고 당당히 말하죠. 하지만 교과서엔 그녀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급진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주류 서사에서 배제된 셈입니다.
2. 불을 끈 이름 없는 노동자들 – 청계천 평화시장 청년들
1970년 11월,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한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옆엔 수많은 이름 없는 동료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평화시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16시간 넘게 봉제 노동을 하던 여성들, ‘시다’라 불리던 10대 소녀들.
이들은 기록도, 이름도 없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저항은 한국 노동운동의 씨앗이 되었죠. 역사는 전태일을 기억하지만, 그와 함께 싸운 무수한 '비주류'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광복 후 ‘부역자 청산’에 나선 사람들 – 민간 재판관들
광복 이후, 일제 강점기에 친일행위를 했던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위원회는 정치적 압박과 내부 분열로 1년도 못 가 해체됩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조사관, 변호사, 기자 등 다양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부역자를 조사하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목숨을 걸고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비록 반민특위는 실패했지만, 그들의 활동은 지금도 역사 정의의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4. 제주 4.3의 증언자들 – 이름 없는 ‘산 사람’들
제주 4.3 사건은 오랜 시간 ‘금기’의 역사였습니다. 수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지만, 한동안 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이들은 오랫동안 침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살아남은 어르신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마을을, 청춘을 잃고도 증언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선 그들은, 평범한 듯 비범한 ‘비주류 영웅’입니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지만, 그들의 증언이 오늘날의 진실을 만들었습니다.
5. 왜 비주류 영웅을 기억해야 할까?
우리는 종종 '위대한 업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배웁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이 싸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바꿨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냈습니다.
6. 작은 이름들의 큰 역사
비주류 영웅들은 대개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감내한 용기와 고통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다시 바라볼 때, 그 중심에 이들 ‘작은 이름’을 놓을 수 있다면, 아마도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기억되지 않으면, 반복됩니다. 역사는 '큰 사람'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사람'이 써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