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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죽음보다 더 궁금한 건, 장례 후 이야기다

by 블하이 2025. 4. 21.

역사를 보면 왕의 죽음은 하나의 큰 사건이다. "승하(昇遐)"라 불리던 조선 왕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정치, 의례, 사회 전체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건 거기까지다. ‘왕이 죽었다’는 뉴스 이후,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화려한 국장(國葬) 이후, 조정과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이번 글에서는 '죽음' 자체보다도, 그 이후의 풍경에 주목해본다. 왕의 장례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진짜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왕의 죽음보다 더 궁금한 건, 장례 후 이야기다
왕의 죽음보다 더 궁금한 건, 장례 후 이야기다

 

 

 

1.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정치는 계속된다

조선시대 왕이 죽으면 곧바로 ‘국상(國喪)’이 선포된다. 왕을 위한 3년상(實際로는 약 27개월)이 시작되고, 나라 전체가 애도에 들어간다. 관리들은 흰 옷을 입고, 음악과 잔치는 금지된다. 백성들도 붉은 옷이나 장신구를 피하며 조심스러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조정은 그 순간부터 더 바빠진다. 왕위 계승이 곧장 이뤄지고, 새로운 왕은 아버지 혹은 전왕의 장례를 주관하면서 동시에 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왕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생의 마무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정치적 긴장과 권력 재편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애도의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 다툼’의 시간이었다.

 

 

 

2. 무덤은 어떻게, 어디에 지었을까?

왕이 죽은 뒤, 조선은 정성을 다해 무덤 자리를 고른다. 풍수지리에 따라 길지(吉地)를 찾는 작업부터가 엄청난 규모였다. 산과 물의 흐름, 조상의 무덤과의 거리까지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명당을 찾는 데만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왕릉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다. ‘왕이 잠든 성역’이었기에 주변엔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여야 하고, 수문장석(石)이나 문무석인(文武石人) 등 상징적인 석조물들이 함께 배치되었다. 이후 왕릉은 조선 내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 중 하나가 되었고, 후손들의 정기적인 참배와 제례의 장소로 기능했다.

 

왕이 사라진 자리는 단지 비석과 무덤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백성이 기억을 이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3. 궁궐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왕이 죽으면, 궁궐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뀐다. 우선 왕비는 대비가 되거나 함께 장례 절차를 준비한다. 조정 신하들은 상복을 입고 근신하지만, 궁 내부는 오히려 긴장감이 팽팽하다. 새 왕이 등극하면서 궁궐 내 권력 구조도 새로 짜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비나 왕실 여성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린 세자가 즉위하는 경우, ‘수렴청정’이라 하여 대비가 국정을 대리하는 체제가 시작되는데, 이때 궁궐은 외척과 대신들 사이의 치열한 정치 전장으로 바뀐다.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새로운 정치의 중심이 궁궐 깊숙한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다.

 

 

 

4. 백성들은 왕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왕의 죽음은 백성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국상이 선포되면 마을마다 부고가 전달되고, 일정 기간 동안 혼례나 축제는 금지되었다. 왕의 이름이 담긴 물건이나 간판도 일시적으로 내려야 했고, 상인들은 붉은 색 물건을 진열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백성이 같은 감정으로 애도한 것은 아니다. 먼 지방의 농민들에게 왕의 죽음은 그리 피부에 와닿는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조세 감면이나 역 면제 같은 실질적인 조치가 더 관심 대상이었다. 물론 유생들이나 양반층에서는 국왕의 승하를 두고 조문 의식을 갖추며 슬픔을 표하기도 했다.

 

왕은 백성의 군주였지만, 동시에 ‘먼 존재’이기도 했다. 국상 기간, 백성들은 표면적인 애도 속에서도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했고, 조선의 시간은 그렇게 다시 흘러갔다.

 

 

 

5. 왕이 된 자, 그리고 '왕이 남긴 것'

장례가 끝나고도 왕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 실록과 묘지명, 어진(왕의 초상화)이 제작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후대 왕과 백성에게 남기는 유산이었다.

새로운 왕은 종종 전왕의 유지를 강조하며 정치를 시작했고, 조선은 늘 과거 왕의 통치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반성했다. 왕이 죽은 뒤에도, 그 흔적은 다음 세대의 기준이자 거울이 되었다.

 

 


역사는 종종 '누가 죽었는가'에 집중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이후 어떤 삶이 이어졌는가’다. 조선에서 왕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장례 후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선의 정치, 권력, 기억, 그리고 인간적인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죽은 왕은 말이 없지만, 장례 이후의 조선은 말이 많다. 그리고 그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오늘 주목해야 할 진짜 역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