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많이 들어보셨을 말씀이지요.
역사의 서술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편집자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가 단순히 승자의 서술이 아니라, 그 기록을 다듬고 골라내는 편집의 결과물이라면 어떨까요?
기록을 남긴 자가 곧 승자인가요?
과거를 돌아보면, 승자는 언제나 역사책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왕, 나라를 세운 정복자, 혁명을 성공시킨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철저히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 기록’들만 살아남은 결과입니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사라진 수많은 이야기들,
패배한 쪽의 관점은 소리 없이 지워졌고,
권력자의 삶은 미화되거나 의도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편집의 힘, 그리고 선택의 역사
현대에 들어서면서 역사는 더 이상 한 사람이나 집단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료가 발굴되고, 다양한 시각에서 재해석되는 과정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편집된 역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 중 일부를 선택해야 하고,
한정된 지면에 넣기 위해 어떤 사건은 강조되고, 어떤 인물은 삭제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실은 ‘민감하다’는 이유로 조용히 빠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기록자만큼이나, 편집자의 의도와 관점이 반영됩니다.
따라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이제는 ‘편집자의 작품’이라는 한 줄을 덧붙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고정된 진실이 아닙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눈으로 해석하는 작업입니다.
같은 사건도 누가, 어떤 시대에서, 어떤 맥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지요.
예를 들어,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선생의 유배는 과거에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으로만 서술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유배지에서 꽃피운 사상과 철학’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시대가 바뀌고, 시선이 달라지면, 같은 인물도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역사는 고정된 진실이라기보다,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편집되며, 다시 질문받아야 할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바라봐야 할까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로 역사의 불완전함을 지적하는 데에서 멈추기보다는,
이제는 ‘누가 그 역사를 편집하고 있는가’에까지 시선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시선, 더 다양한 목소리, 더 정직한 질문이 역사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편집된 서술 너머를 궁금해하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작은 의심을 품는 태도가 우리를 더 깊은 역사로 안내해줄 것입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누구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왜,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졌을까요?
이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