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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법감정은 어땠을까? 조선 시대 판결 사례 분석 조선 시대 판결 속 민심을 들여다보다조선 시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왕과 신하들의 권위, 엄격한 유교 질서, 그리고 사대부 중심의 정치 구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 위로만 사회가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판결 속에는 백성들의 목소리, 법감정, 억울함과 수긍이 함께 존재했다. 조선의 사법 체계는 단순히 국가의 권위만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당시 백성들이 느끼는 ‘공정함’과도 부딪히고 타협했다. 억울하면 울부짖어라 – ‘신문고’의 실체조선은 중앙 집권적이면서도 민심을 수렴하려는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신문고 제도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대궐 앞 북을 두드려 억울함을 알릴 수 있었던 이 제도는 백성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북을 두드릴 수 있었던 이는 일.. 2025. 4. 25.
전쟁보다 무서웠던 역병 – 조선의 감염병 대처법 조선은 감염병과 어떻게 싸웠나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참사다. 그러나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역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역병 관련 기사는 수천 건에 이른다. “전쟁은 땅을 빼앗지만, 역병은 사람을 앗아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조선은 감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과학이 아닌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던 조선의 방역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감염병과도 묘한 울림을 남긴다. 1. 실록 속 반복되는 단어: 疫(역)조선왕조실록에서 '역(疫)'이라는 단어는 임진왜란보다 훨씬 자주 등장한다. 전염병은 대개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콜레라 유사 질병이었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1494년, 성종 실록에는 "온 나라에 역질이 돌아 백성의 1.. 2025. 4. 23.
왕보다 부자였던 조선 상인들, 실록에 없는 경제이야기 실록이 외면한 조선의 경제 엘리트들조선시대는 유교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사회였다. ‘농업은 근본, 상업은 천시’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왕조는 유교를 앞세웠지만, 시장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였다.조선 후기, 일부 상인은 왕보다 많은 부를 쌓았고, 은밀하게 권력과 손을 잡기도 했다. 실록에는 조심스레 언급됐지만, 경제의 주도권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1. ‘돈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폐 유통과 상업 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국 곳곳에 장시(場市, 5일장)가 생겨나고, 상업 중심지였던 평양, 개성, 의주, 한양은 새로운 돈의 허브가 되었다.특히 개성의 송상(松商)은 조선 상업사에서 독보적이다. 그들은 포목·인삼·쌀을 중심으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 2025. 4. 23.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구술사로 본 한국 현대사 말로 남긴 기억, 문서 밖의 진짜 역사공식 기록은 언제나 단정하다. 연대가 정확하고, 사건이 명확하다. 그러나 그렇게 정제된 기록 뒤에는 수많은 ‘말’들이 있다. 공문서에도, 신문에도 남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구술사(口述史)는 그 잊힌 기억을 붙잡는 작업이다. ‘기록 밖의 사람들’을 발굴하는 방법구술사는 ‘말로 쓴 역사’다. 과거를 직접 겪은 이들의 육성을 바탕으로, 문서화되지 않은 경험을 기록한다. 구술 인터뷰는 대부분 일대일로 진행되며, 음성 자료를 텍스트로 전사하고 분석해 역사적 맥락 안에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나 언론의 시선이 미치지 않았던 개인의 경험이 드러난다. 가령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던 무명의 노동자, 6·25 전쟁을 피난민으로 겪은 어린 소녀, .. 2025. 4. 22.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 전쟁과 재난이 비추는 ‘비역사적 인물’의 존재감역사는 위인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왕과 장군, 혁명가와 지도자의 이름이 교과서의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러나 전란이나 재난 같은 거대한 사건이 발생할 때, 평소 주목받지 않던 이들의 이름이 기록에 등장한다.그들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역사책에 남지 않았을,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전쟁이 남긴 이름들: ‘김달손’의 사례임진왜란 당시 영의정 류성룡은 《징비록》을 집필하며 여러 민간인의 행동을 기록했다. 그 중 하나가 경상도 밀양 출신의 농민 김달손이다. 그는 피난 중 굶주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식량을 나누고, 부상당한 백성을 도왔다는 이유로 류성룡의 기억에 남았다. 김달손은 관직자도, 군사도 아니었으나 전란 속에서 보인 이타적 행.. 2025. 4. 22.
왕의 죽음보다 더 궁금한 건, 장례 후 이야기다 역사를 보면 왕의 죽음은 하나의 큰 사건이다. "승하(昇遐)"라 불리던 조선 왕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정치, 의례, 사회 전체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건 거기까지다. ‘왕이 죽었다’는 뉴스 이후,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화려한 국장(國葬) 이후, 조정과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이번 글에서는 '죽음' 자체보다도, 그 이후의 풍경에 주목해본다. 왕의 장례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진짜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1.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정치는 계속된다조선시대 왕이 죽으면 곧바로 ‘국상(國喪)’이 선포된다. 왕을 위한 3년상(實際로는 약 27개월)이 시작되고, 나라 전체가 애도에 들어간다. 관리들은 흰 옷을 입고, 음악과 잔치는..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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