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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는 누구의 것인가 – 조선 기술도입의 두 얼굴 “조선은 왜 근대화에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던지는 물음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 속에는 암묵적인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근대화란 곧 ‘필연적인 발전’이며, ‘서구적 기술의 수용’은 곧 진보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조선 말기 기술 도입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합니다. 조선이 수용한 근대 기술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권력과 제도, 외세와 민중의 삶까지 뒤흔든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 조선이 서양기술을 받아들인 시기조선이 처음 서양 기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시기는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1883년 설치된 기기국입니다. 이곳에서는 서양식 무기와 군수물자를 제조했으며, 청나라의 기술자와 미국식 장비가 투입됐습니다. 1.. 2025. 4. 30.
왜 조선엔 ‘전기’가 늦게 들어왔나 – 근대화의 미묘한 속도 근대화의 문턱 앞에서 멈춘 빛의 시대서울 종로에 처음으로 불이 켜진 것은 1887년, 고종의 경복궁 건청궁에서 열린 생일잔치 자리였다.이날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전등’이 켜진 날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후 전기의 확산은 더디기만 했다.왜 조선은 ‘전기의 시대’로 빠르게 넘어가지 못했을까? 미국에서 건너온 전기, 왕실의 상징이 되다조선에 전기가 들어온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인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 덕분이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고종은 미국 공사관을 통해 최신 문물을 적극 수입한다. 그중 하나가 ‘전기’였고, 건청궁과 덕수궁 등에 설치된 전등은 황제의 위신을 상징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는 왕궁 안의 이야기였다. 전기는 곧바로 백성의 일상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전.. 2025. 4. 25.
백성들의 법감정은 어땠을까? 조선 시대 판결 사례 분석 조선 시대 판결 속 민심을 들여다보다조선 시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왕과 신하들의 권위, 엄격한 유교 질서, 그리고 사대부 중심의 정치 구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 위로만 사회가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판결 속에는 백성들의 목소리, 법감정, 억울함과 수긍이 함께 존재했다. 조선의 사법 체계는 단순히 국가의 권위만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당시 백성들이 느끼는 ‘공정함’과도 부딪히고 타협했다. 억울하면 울부짖어라 – ‘신문고’의 실체조선은 중앙 집권적이면서도 민심을 수렴하려는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신문고 제도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대궐 앞 북을 두드려 억울함을 알릴 수 있었던 이 제도는 백성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북을 두드릴 수 있었던 이는 일.. 2025. 4. 25.
전쟁보다 무서웠던 역병 – 조선의 감염병 대처법 조선은 감염병과 어떻게 싸웠나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참사다. 그러나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역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역병 관련 기사는 수천 건에 이른다. “전쟁은 땅을 빼앗지만, 역병은 사람을 앗아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조선은 감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과학이 아닌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던 조선의 방역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감염병과도 묘한 울림을 남긴다. 1. 실록 속 반복되는 단어: 疫(역)조선왕조실록에서 '역(疫)'이라는 단어는 임진왜란보다 훨씬 자주 등장한다. 전염병은 대개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콜레라 유사 질병이었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1494년, 성종 실록에는 "온 나라에 역질이 돌아 백성의 1.. 2025. 4. 23.
왕보다 부자였던 조선 상인들, 실록에 없는 경제이야기 실록이 외면한 조선의 경제 엘리트들조선시대는 유교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사회였다. ‘농업은 근본, 상업은 천시’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왕조는 유교를 앞세웠지만, 시장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였다.조선 후기, 일부 상인은 왕보다 많은 부를 쌓았고, 은밀하게 권력과 손을 잡기도 했다. 실록에는 조심스레 언급됐지만, 경제의 주도권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1. ‘돈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폐 유통과 상업 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국 곳곳에 장시(場市, 5일장)가 생겨나고, 상업 중심지였던 평양, 개성, 의주, 한양은 새로운 돈의 허브가 되었다.특히 개성의 송상(松商)은 조선 상업사에서 독보적이다. 그들은 포목·인삼·쌀을 중심으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 2025. 4. 23.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구술사로 본 한국 현대사 말로 남긴 기억, 문서 밖의 진짜 역사공식 기록은 언제나 단정하다. 연대가 정확하고, 사건이 명확하다. 그러나 그렇게 정제된 기록 뒤에는 수많은 ‘말’들이 있다. 공문서에도, 신문에도 남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구술사(口述史)는 그 잊힌 기억을 붙잡는 작업이다. ‘기록 밖의 사람들’을 발굴하는 방법구술사는 ‘말로 쓴 역사’다. 과거를 직접 겪은 이들의 육성을 바탕으로, 문서화되지 않은 경험을 기록한다. 구술 인터뷰는 대부분 일대일로 진행되며, 음성 자료를 텍스트로 전사하고 분석해 역사적 맥락 안에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나 언론의 시선이 미치지 않았던 개인의 경험이 드러난다. 가령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던 무명의 노동자, 6·25 전쟁을 피난민으로 겪은 어린 소녀, .. 2025. 4. 22.